히트펌프(Heat Pump)는 냉장고나 에어컨과 같은 장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주로 외부의 열을 실내로 옮기거나, 반대로 실내의 열을 외부로 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최근에는 친환경 기술로 각광받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히트펌프는 사용하는 전기보다 최대 4배 이상 많은 열을 옮길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를 효율로 나타내면 400% 이상이 됩니다.
듣기만 해도 놀라운 효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렇게 효율 좋은 히트펌프를 이용해 곧바로 전기를 생산하면 안 될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히트펌프를 이용한 전기 생산 방식이 거의 없는데요.
과연 왜 그런 걸까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히트펌프가 효율 좋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우선 작동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히트펌프는 열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열을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겨울철 밖이 춥더라도 바깥 공기에는 여전히 열이 있습니다.
이 열을 실내로 옮겨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는 히트펌프와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합니다.
보통 발전소는 물을 끓여 고온·고압의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매우 큰 온도 차이'입니다.
발전 효율은 뜨거운 쪽과 차가운 쪽의 온도 차가 클수록 높아집니다.
일반적인 발전소는 수백°C의 증기를 사용하며, 이 정도의 온도를 히트펌프로 만들어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히트펌프가 옮기는 열은 40°C에서 최대 70°C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 정도로는 터빈을 돌리기에 충분한 고압의 증기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더 높은 온도를 만들 수 있지만, 온도 차이가 커질수록 히트펌프 효율은 급격히 떨어져 결국 전기 생산에 적합하지 않게 됩니다.
기술적 한계뿐 아니라 물리학적으로도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열역학 법칙 때문인데요.
열역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카르노 효율(Carnot efficiency)'입니다.
카르노 효율은 열을 전기나 운동과 같은 유용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최대 이론 효율을 나타냅니다.
이 효율은 절대 100%를 넘을 수 없으며, 현실에서는 손실로 인해 항상 더 낮습니다.
히트펌프는 카르노 사이클을 역방향으로 돌리는 장치입니다.
즉,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열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장치인데요.
이렇게 높은 온도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전기 같은 추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얻은 열을 다시 전기로 바꾸는 터빈 과정은 역으로 열을 낮은 온도로 흐르게 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히트펌프가 사용한 전기만큼만 회수할 수 있을 뿐, 추가적인 전기를 얻기는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한마디로, 완벽한 이론적 상황에서도 히트펌프와 터빈을 결합하면 사용한 만큼의 전기만 돌아오게 됩니다.
현실에서는 각 과정에서 손실이 생기므로, 결국엔 사용한 전기보다 훨씬 적게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히트펌프와 터빈은 열역학적으로는 서로 반대의 장치인데요.
히트펌프는 전기를 써서 열을 높은 곳으로 올리고, 터빈은 열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를 때 그 힘으로 전기를 만듭니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장치가 바로 스털링 엔진(Stirling Engine)입니다.
스털링 엔진은 온도 차이를 이용해 기체를 팽창·수축시키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엔진입니다.
스털링 엔진과 히트펌프는 모두 온도차를 이용하는 장치지만, 스털링 엔진은 온도 차이가 클수록 효율이 높아지는데 반해, 히트펌프는 온도 차이가 클수록 효율이 낮아집니다.
따라서 이 두 장치를 결합해도 추가적인 전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히트펌프를 사용한 전기 생산은 비효율적이지만, 비슷한 원리로 실제로 전기를 만드는 기술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태양열 발전과 지열 발전입니다.
태양열 발전은 태양의 높은 온도(약 5500°C)의 열을 거울로 집중시켜 증기를 만들고,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히트펌프와 달리 전기 소모가 거의 없습니다.
지열 발전은 땅속 깊은 곳의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를 이용해 발전하는 방식입니다.
일부 지열 발전소는 히트펌프를 사용하여 지하의 열을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국 지구 내부에서 공급되는 높은 온도의 열이 있어야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즉, 히트펌프 자체가 아니라 자연적인 높은 온도의 열원이 중요합니다.
결국 히트펌프는 전기 생산보다는 난방이나 냉방, 온수 공급 같은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외부의 열을 효율적으로 옮기는 역할에는 매우 뛰어나지만, 전기 생산 과정처럼 큰 온도 차이를 만들고, 이를 다시 전기로 변환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히트펌프가 전기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면, 에너지 기술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히트펌프는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난방, 냉방 수단으로써 더욱 발전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