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폭탄으로 강대국에 맞선 제퍼슨의 위험한 도박

1806년 4월 18일,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은 자신의 서재에서 아주 중요한 법안 하나에 서명을 하는데요.
이 법은 겉보기에는 전쟁 선포와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영국을 향한 강력한 경제적 경고장이었습니다.
'1806년 비수입법(Non-importation Act of 1806)'이라 불린 이 법은 영국산 가죽, 실크, 주석 등 특정 상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거든요.
당시 미국은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국과 다시 총칼을 겨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제퍼슨은 무기 대신 '아이디어와 종이의 힘'으로 강대국에 맞서보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제퍼슨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벌이던 나폴레옹 전쟁 때문이었는데요.
두 나라는 서로의 적국으로 물자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의 무역선들을 마구잡이로 나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국은 한술 더 떠서 미국 배에 올라타 선원들을 영국 해군으로 강제 징집하는 '강제 징집(Impressment)' 행위를 일삼았거든요.
자국민이 납치당하는 상황에서 제퍼슨은 전쟁이 아닌 경제적 보복으로 영국의 항복을 받아내려 했습니다.
'너희가 우리 배를 괴롭힌다면 우리는 너희의 물건을 사지 않겠다'는 논리적인 선언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평화적인 압박이 통하기도 전에 뉴욕항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 마는데요.
영국 군함 리앤더(HMS Leander)호가 검문을 위해 쏜 대포에 미국인 조타수 존 피어스(John Pierce)가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은 죽은 피어스의 시신을 메고 거리로 나와 격렬한 시위를 벌였거든요.
제퍼슨은 이 사건에 대응해 영국 군함의 항구 출입을 금지했지만 여전히 전면전만큼은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경제적 타격이 결국 영국을 굴복시킬 것이라는 '평화적 강제력'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제퍼슨은 1807년 자신의 마지막 카드인 '무역 금지법(Embargo Act)'을 꺼내 드는데요.
미국의 모든 농산물과 자재 수출을 중단하면 영국과 프랑스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 도박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미국 경제에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거든요.
수출길이 막히자 뉴욕항의 수백 척의 배는 썩어갔고 수천 명의 선원이 하룻밤 사이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풍요로웠던 항구 도시의 거리에 풀이 돋아날 정도로 미국의 경제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살길이 막막해진 사람들은 결국 법을 어기고 밀수업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는데요.
캐나다 국경 지대에서는 수레를 일부러 전복시켜 물건을 넘기거나 밤을 틈타 숲속으로 물자를 나르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제퍼슨은 이를 막기 위해 자국민을 향해 군대를 동원하고 국경을 봉쇄하는 초강수를 두게 되거든요.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던 '자유의 화신' 제퍼슨이 정작 자신의 백성들을 무력으로 압박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이 위험한 경제 실험은 15개월 만에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요.
영국은 미국 대신 남미라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며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금지령 덕분에 외부 물건을 쓸 수 없게 된 미국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공장을 짓는 '산업 혁명'이 시작되는 부수적인 효과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퍼슨은 퇴임 후 자신의 묘비명에 '대통령'이라는 직함조차 적지 않았을 만큼 이 시기를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겼거든요.
무역을 무기로 삼으려 했던 그의 시도는 오늘날까지도 국가 간의 경제 전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