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톡] 3살 이전, 기억 안 나는 이유?](https://img8.yna.co.kr/mpic/YH/2023/02/10/MYH20230210013900797_P4.jpg)
어릴 적 앨범을 펼쳐보면 분명히 환하게 웃고 있는 '나'인데, 정작 그때의 기억은 희미하다 못해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경험, 다들 있으실 텐데요.
분명 걷고 말하는 법도 배우고, 세상 모든 게 신기했을 아주 중요한 시기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소중한 첫 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걸까요?
오늘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이 미스터리를 뇌과학적 관점에서 속 시원하게 파헤쳐 보려고 하거든요.
우리가 아기였을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데에는 아주 명확하고 과학적인 이유들이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특정 부분이 아직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인데요.
우리 뇌에서 경험을 장기적인 기억으로 전환하고 보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해마(Hippocampus)'입니다.
그런데 이 해마라는 영역이 보통 만 3세에서 4세가 될 때까지는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거든요.
마치 최신형 컴퓨터를 장만해도 데이터를 저장할 하드디스크가 아직 설치되지 않은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아기의 뇌는 그 시기에 걷기, 말하기, 균형 잡기, 세상의 사물 인지하기 등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다른 기능들을 익히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데요.
상대적으로 장기 기억을 형성하는 기능은 후순위로 밀려나 있기 때문에, 수많은 경험들이 스쳐 지나갈 뿐 제대로 저장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설령 기억이 어떻게든 저장되었다고 해도, 우리가 나중에 그 기억을 꺼내보려면 또 다른 중요한 도구가 필요하거든요.
바로 저장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할 수 있는 '파일링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 파일링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언어'인데요.
아기들은 아직 세상을 표현하고 경험을 정의할 언어 능력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보통 '슬펐다', '기뻤다', '엄마가 나를 안아주었다'처럼 언어를 통해 경험에 이름표를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며 기억의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해두는데요.
언어가 없는 아기들에게는 이런 체계적인 정리가 불가능했던 겁니다.
그래서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 드물게 남아있다고 해도, 그것은 보통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강렬한 '감정'이나 '이미지'의 파편인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왠지 모를 불안감'이나 '따뜻하고 포근했던 느낌'처럼 말이죠.
이는 기억을 꺼내올 실마리가 되어줄 언어라는 '색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기의 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역동적인 변화를 겪는데요.
생후 몇 년 동안 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엄청난 수의 신경세포 연결, 즉 '시냅스'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초기에 형성된 이 연결망은 매우 무작위적이고 비효율적이거든요.
그래서 뇌는 성장 과정에서 불필요하고 덜 사용되는 연결은 과감하게 잘라내는 '가지치기'라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더 효율적이고 정교한 신경 회로망이 완성되는 건데요.
과학자들은 바로 이 대대적인 뇌 리모델링 과정에서, 초기에 형성되었던 어설프고 불안정한 기억 회로들이 함께 정리되거나 사라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 빠르고 튼튼한 뇌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에서, 초기의 희미한 기억들이 희생되는 셈인 것이죠.
정리하자면, 우리가 아기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억 저장소인 해마가 아직 미성숙했고, 기억을 정리하고 꺼내올 언어라는 도구가 없었으며, 뇌가 더욱 효율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초기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의식 속에는 그 시간들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 무수한 첫 경험과 감정들은 분명 지금의 우리를 만든 단단한 토대가 되었을 텐데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니까요.
그 시간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새겨져,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가장 소중한 첫걸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