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맘 먹고 비싼 헤드폰을 새로 샀는데, 케이블 단자가 20년 전에 쓰던 것과 똑같아서 의아했던 적 없으신가요?
분명 컴퓨터 모니터 케이블은 VGA에서 DVI로, 이제는 HDMI가 표준이 되었고, 마우스와 키보드도 어느새 USB-A를 거쳐 USB-C로 바뀌고 있거든요.
충전 케이블 역시 제조사마다 제각각이던 모양에서 USB-C로 통일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유독 헤드폰에 쓰이는 3.5mm 오디오 잭만은 수십 년째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오늘은 왜 오디오 잭만 이렇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는지, 그 흥미로운 이유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오디오 잭이 '아날로그' 신호를 전송하기 때문입니다.
영상 케이블이나 USB 케이블은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데이터를 전송해야 하는데요.
해상도가 높아지고 전송 속도가 빨라지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한 번에 보내야 했기 때문에, 시대에 맞춰 계속 발전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오디오 잭의 임무는 훨씬 단순했거든요.
음악 파일이 MP3든 무손실 음원이든, 기기 내부의 'DAC(Digital-to-Analog Converter)'라는 장치가 먼저 소리를 전기 신호, 즉 아날로그 파동으로 바꿔주는데요.
오디오 잭은 이 전기 신호를 헤드폰으로 전달해 스피커를 울리는 역할만 하면 충분했습니다.
즉, 소리의 파동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이 신호를 전달하는 케이블 역시 굳이 바뀔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디오 잭은 단순한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사실상 '완성형 디자인'에 가깝습니다.
좌우 스테레오 사운드를 구분하고, 접지(ground)를 통해 노이즈를 막는 기본적인 구조만으로 충분하거든요.
여기서 굳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봤자 얻는 이점은 거의 없고, 오히려 가격만 비싸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굳이 잘 굴러가는 바퀴를 새로 발명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인 셈입니다.
물론 애플(Apple)처럼 오디오 잭을 없애고 라이트닝이나 USB-C 포트로 통합하려는 시도도 있었는데요.
이는 기술의 발전보다는 기기를 더 얇게 만들려는 디자인적인 목표나, 새로운 액세서리 시장을 열려는 상업적인 목적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디오 잭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맞춰 조용한 진화를 거듭해 왔거든요.
원래 오디오 잭의 원조는 19세기 전화 교환기에 쓰이던 6.35mm(1/4인치) 커넥터였는데요.
이후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소니(Sony)의 워크맨 같은 휴대용 기기가 등장하면서 더 작은 3.5mm 규격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또한, 처음에는 소리가 하나로 나오는 모노(Mono) 방식이었지만, 이후 스테레오(Stereo) 사운드를 위해 단자에 '링'이 하나 추가되었고요.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는 마이크 기능까지 더하기 위해 링이 하나 더 추가된 'TRRS' 방식이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기능적으로는 꾸준히 개선되어 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3.5mm 오디오 잭은 아날로그 오디오 신호를 전달하는 가장 단순하고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블루투스(Bluetooth) 같은 무선 기술이 빠르게 오디오 잭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데요.
선이 없는 편리함이 아날로그의 안정성을 뛰어넘는 가치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쩌면 오디오 잭의 진정한 다음 세대 기술은 새로운 모양의 케이블이 아니라, 아예 선이 사라진 '무선 연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