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in read

미주리호 항복문서, 20세기 최악의 전쟁을 끝낸 단 한 장의 사진

미주리호 항복문서, 20세기 최악의 전쟁을 끝낸 단 한 장의 사진

1945년 9월 2일, 도쿄만 바다 위는 이상할 정도로 잔잔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미 해군 전함 '미주리호'의 갑판은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6년 넘게 이어지며 7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바로 그곳에서 막을 내리고 있었거든요.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가 떨리는 손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단 한 장의 흑백 사진, 우리는 이 사진을 통해 전쟁의 끝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 고요하고 엄숙한 풍경 뒤에는, 승전국들의 차가운 계산과 패전국의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가 숨어있었습니다.

역사의 무대, 왜 '미주리호'였을까

수많은 연합군 함선 중에서 하필 '미주리호'가 항복 서명의 무대로 선택된 데에는 아주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거든요.

이 배는 당시 미 해군의 최신예 전함으로, 그 존재 자체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상징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위치였습니다.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만에 정박한 최신예 전함 위에서 항복을 받는다는 것, 이것은 패전국 일본에게 그 어떤 말보다 더 강력한 심리적 충격을 주는 최고의 연출이었습니다.

그날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디테일이 있는데요.

항복 의식을 주관한 미군의 맥아더 장군은 일부러 간소한 카키색 군복 차림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일본 대표단은 격식을 갖춘 정장과 실크햇 차림이었죠.

이 극명한 대비는 승자와 패자의 위치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는, 고도로 계산된 장면이었습니다.

연합군은 갑판 위에서 요란한 축하 행사를 열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의 대가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승리, 다른 계산법

미주리호 갑판 위에 나란히 서 있었지만, 승전국들의 속내는 저마다 달랐는데요.

먼저 '미국'에게 이 항복은 수십만 미군의 목숨을 구한 결정이었습니다.

만약 일본 본토 상륙작전, 이른바 '몰락 작전(Operation Downfall)'이 실행되었다면, 미군 측에서만 최소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끔찍한 예측이 있었거든요.

따라서 이 항복 서명은 피 흘리지 않고 얻어낸 '가장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중국'에게 이 순간은 무려 14년간 이어진 처절한 항일전쟁의 끝을 의미했습니다.

수천만 명의 희생 끝에 얻어낸, 너무나도 늦었지만 너무나도 간절했던 승리의 증표였죠.

반면 '소련'에게 일본의 항복은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전쟁 막바지에 급하게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로 진격한 소련은, 이 항복을 기점으로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북부에 대한 자신들의 전략적 영향력을 확실하게 굳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한반도의 운명

그런데 이 역사적인 사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인데요.

미주리호 갑판 위에서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한 그 순간은, 우리 민족에게는 35년간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광복'의 완성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그 해방의 기쁨 속에는 비극의 씨앗이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소련이 한반도 북부에 진주하면서, 미주리호의 항복 서명은 곧바로 다가올 냉전의 서막이자 한반도 분단의 시작점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1945년 9월 2일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아픈 날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승리했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

전 세계는 라디오를 통해 '전쟁은 끝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는데요.

하지만 전쟁의 포화가 멎자마자, 세계는 '냉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어제의 동맹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이제 이념을 달리하는 적이 되어 서로를 향해 핵무기를 겨눴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유엔(UN)이 창설되었지만, 거대 양대 진영의 대립은 또 다른 긴장과 불안을 낳았습니다.

결국 미주리호의 항복 서명은 진정한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단지 '뜨거운 전쟁'이 '차가운 전쟁'으로 모습을 바꾼 전환점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80년이 지나 다시 보는 역사의 경고

오늘날 우리는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며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이 사진은 단순히 한 제국의 몰락이나 승자의 영광을 기록한 박제된 역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전쟁에는 진정한 승자가 없으며, 평화는 결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인류가 스스로에게 남긴 가장 값비싼 '경고문'입니다.

8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주리호 갑판 위를 가득 채웠던 그 무거운 침묵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합니다.

그날의 항복 문서에 찍힌 잉크 자국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진정한 교훈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Related Posts

현재 글 미주리호 항복문서, 20세기 최악의 전쟁을 끝낸 단 한 장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