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역사에는 유독 한순간의 사건이 이후 수천 년의 운명을 결정짓는 극적인 장면들이 있는데요.
오늘 이야기할 서기 70년의 예루살렘 함락과 '제2성전'의 파괴는 바로 그런 순간 중 하나입니다.
로마 제국의 군홧발 아래 도시가 짓밟히고, 유대 민족의 심장이었던 성전이 불타오르던 그날의 불길은 단순히 한 도시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거든요.
그것은 유대교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신생 종교였던 기독교가 뻗어 나갈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로마 제국의 힘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기억을 갖게 된 세 문명, 즉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로마의 시선으로 그날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보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서기 70년의 그날은 '대재앙(Churban)'의 정점이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날로 기억되는데요.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로마 제국의 압제에 저항하며 일어난 '유대 대반란(The Great Revolt)'이었습니다.
서기 66년,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뭉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로마 주둔군을 몰아내고 잠시나마 자치권을 되찾는 데 성공하거든요.
하지만 세계 최강 로마 제국이 이 도전을 용납할 리 없었습니다.
훗날 황제가 되는 티투스(Titus)가 이끄는 로마의 정예 군단은 예루살렘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기나긴 고사 작전에 들어갑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성안의 상황은 그야말로 지옥도였다고 하는데요.
식량이 바닥나 끔찍한 기근이 도시를 덮쳤고, 설상가상으로 유대인 내부의 여러 파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내전까지 벌이며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로마 군단이 성벽을 뚫고 들어왔을 때, 예루살렘에 남은 것은 무자비한 학살과 파괴뿐이었습니다.
수만 명이 살해당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노예로 팔려나가 제국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졌죠.
이 파괴의 정점은 바로 '제2성전'의 소실이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화려하게 증축한 이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거든요.
그곳은 유대 민족의 신앙과 율법, 그리고 정체성의 중심, 말 그대로 민족의 '심장'이었습니다.
성전에서만 드릴 수 있었던 제사 의식은 그들의 신앙생활 그 자체였죠.
그런데 그 심장이 로마 군단의 불길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대교는 역사상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더 이상 물리적인 성전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된 유대인들은, 이제 어디서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회당(Synagogue)'을 중심으로 신앙을 이어가게 됩니다.
제사장 중심의 종교에서, 율법 학자인 '랍비(Rabbi)' 중심의 종교로 운영체제가 완전히 바뀐 것이죠.
오늘날 우리가 아는 '랍비 유대교'가 바로 이 비극적인 파괴의 폐허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날을 '티샤 베아브(Tisha B'Av)'라는 가장 슬픈 애도의 날로 정하고, 매년 금식하며 2천 년간 이어진 유랑과 고난의 역사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반면, 로마인들에게 예루살렘 정복은 제국의 위대함과 힘을 만방에 과시한 눈부신 승리였는데요.
개선장군이 된 티투스는 로마로 돌아와 성대한 개선식을 열었고,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기념물을 세웁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로마에 남아있는 '티투스 개선문'입니다.
개선문 안쪽 부조를 보면, 로마 병사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일곱 촛대(메노라)'와 성스러운 기물들을 어깨에 메고 행진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거든요.
이것은 반란을 일으킨 민족의 신을 로마의 신이 제압했다는 강력한 정치적 선전이자, 제국에 도전하는 자는 누구든 그들의 가장 신성한 것까지 빼앗길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였습니다.
로마에게 예루살렘의 파괴는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당한 대가였으며, 영원히 기록될 영광의 상징이었던 셈입니다.
한편,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조용히 세력을 넓혀가던 신생 종교, 기독교에게 이 사건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는데요.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겨졌고, 많은 신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 파괴되자, 기독교인들은 이 사건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해, 이제는 돌로 지은 성전이 아닌 '예수 자신이 새로운 성전'이 되었으며, 더 이상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구약의 제사 의식은 필요 없게 되었다는 신학적 해석이 힘을 얻게 된 것이죠.
즉,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유대교 중심의 낡은 시대가 끝나고, 전 세계 모든 민족을 향한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이 해석은 기독교가 유대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로마 제국 전역의 이방인들에게까지 빠르게 전파될 수 있는 중요한 신학적 발판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불길은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비극과 유랑의 시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제국의 영광을 증명하는 기념비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시였습니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각자의 입장과 신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기억되고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인 셈이죠.
오늘날에도 여전히 분쟁과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도시 예루살렘.
그곳의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수많은 피와 눈물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것은, 권력의 영광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통을 대가로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