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쓰는 전기가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 건지, 혹시 깊게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마 대부분은 집 근처 발전소를 떠올리실 텐데요.
그런데 만약 지금 쓰고 있는 이 전기가 무려 1,500km 떨어진 곳에서, 단 0.005초 만에 날아온 것이라면 어떨까요.
SF 영화 같은 이 이야기가 지금 중국에서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 기술, 중국의 '초고압(UHV) 송전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요.
단순한 전력 기술을 넘어서, 한 국가의 에너지 지도를 바꾸고 있는 거대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UHV'라는 단어가 좀 생소하실 수 있거든요.
UHV는 Ultra High Voltage, 즉 '초고압' 송전 기술을 의미합니다.
보통 전압을 높여서 전기를 보낼수록 중간에 사라지는 손실이 줄어들고 더 멀리 보낼 수 있는데요.
UHV는 교류(AC) 송전은 1,000kV, 직류(DC) 송전은 ±800kV 이상을 다루는, 그야말로 송전 기술의 '최상위 리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기존에 널리 쓰이던 500kV 송전선과 비교했을 때 전기를 보낼 수 있는 거리는 45배나 길어지거든요.
반면에 전기가 오다가 길에서 새는 '선로 손실'은 고작 4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집니다.
마치 좁은 국도만 있던 곳에 왕복 8차선 고속도로가 뻥 뚫리는 것과 같은 혁신인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교류(AC)와 직류(DC)는 역할이 좀 다른데요.
'초고압 직류(UHVDC)'는 아주 먼 거리를, 엄청난 용량으로, 중간에 쉬지 않고 한 번에 보내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마치 서울에서 부산까지 논스톱으로 달리는 KTX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초고압 교류(UHVAC)'는 여러 도시를 거치면서 전기를 나눠주고, 또 다른 발전소의 전기를 합치는 등 유연하게 전력망을 구성할 수 있거든요.
이건 여러 나들목(IC)을 통해 차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고속도로 교통망' 자체와 비슷합니다.
중국은 이 두 가지 방식을 마치 KTX와 고속도로망처럼 서로 보완하며 대륙 전체를 잇는 거대한 '에너지 혈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렇게까지 UHV 기술에 집착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중국의 에너지 지도를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중국의 에너지 자원, 그러니까 석탄, 수력, 태양광, 풍력 같은 자원의 80% 이상이 서부와 북부 내륙 지역에 집중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정작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인구와 산업시설의 70% 이상은 동부 해안가 대도시에 몰려 있습니다.
이 엄청난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국가적인 프로젝트가 바로 '서전동송(西電東送)', 즉 '서쪽의 전기를 동쪽으로 보낸다'는 계획이었는데요.
문제는 서쪽 끝 신장 위구르나 칭하이성에서 동쪽 상하이나 베이징까지의 거리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기존 기술로는 전기를 보내는 도중에 절반 이상이 사라져 버리니, 아무리 서쪽에서 친환경 에너지를 많이 만들어도 동쪽 대도시에서는 쓸 수가 없었던 겁니다.
바로 이 '거리의 장벽'을 넘기 위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UHV 기술 개발이 절실했던 것입니다.
사실 UHV 기술은 송전계의 '에베레스트산'으로 불릴 만큼 기술적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하거든요.
단순히 전압만 높이는 게 아니라, 변압기부터 송전탑, 제어 시스템까지 모든 걸 새로 만들어야 하는 수준입니다.
이미 1960년대부터 미국, 일본, 구소련 같은 선진국들이 UHV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기술적인 한계와 운영 효율성 문제에 부딪혀 결국 프로젝트를 축소하거나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이 길을 포기하지 않았는데요.
수십 개의 연구 기관과 대학, 200개가 넘는 장비 제조사, 500개 이상의 건설 부대가 동원되었고, 수십만 명의 인력이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습니다.
그 결과 무려 310개에 달하는 핵심 기술 장벽을 돌파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UHV의 아버지' 류전야(劉振亞)는 "궁지에 몰리지 않으면 혁신의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이건 단순히 기술력의 승리라기보다는, 명확한 국가적 목표 아래 모든 자원을 집중시킨 '행정력'의 승리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서구권 국가들이라면 토지 수용 문제나 환경 영향 평가, 각종 규제 때문에 수십 년이 걸려도 불가능했을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런 차이가 있었던 겁니다.
UHV 프로젝트의 진짜 대단함은 실험실의 기술 개발에서 그치지 않거든요.
오히려 진짜 이야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와 험준한 지형을 극복해야 하는 건설 현장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상-후베이 UHV 라인은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를 통과해야 했는데요.
어떤 구간은 경사가 65도에 달하는, 그야말로 '칼날 능선' 위에 113개의 거대한 철탑을 세워야 했습니다.
산소 농도가 평지의 60%에 불과한 곳에서, 7만 5천 톤에 달하는 자재를 옮기기 위해 36km의 임시 도로를 내고, 도로 건설이 불가능한 곳은 총 길이
60km가 넘는 82개의 케이블을 설치해 자재를 공중으로 운반했다고 합니다.
이건 기술을 넘어선,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극한의 환경을 극복하려는 집념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입니다.
2009년 첫 UHV 프로젝트가 가동된 이후, 중국은 현재까지 총 39개의 UHV 라인을 건설했고, 그 길이는 4만 킬로미터가 넘어가는데요.
이 '하늘의 녹색 전기 길' 덕분에 중국은 최근 수십 년간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지 않았고, 전력 공급 안정성 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중국의 대단한 인프라 자랑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 탄소 중립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거든요.
문제는 태양광 발전은 햇볕이 좋은 사막에, 풍력 발전은 바람이 강한 해안이나 고산지대에 짓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입니다.
즉, 에너지가 생산되는 곳과 소비되는 곳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UHV 프로젝트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환경 파괴나 토지 수용 과정에서의 사회적 갈등 같은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든 깨끗한 에너지를 손실 없이 대도시로 가져올 수 있을까?'라는 미래 에너지 시대의 핵심 질문에, 중국은 UHV라는 가장 강력한 답안 중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거대한 실험이 앞으로 세계 에너지 지도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계속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